보도자료
20170402 오마이뉴스_[헌법 쉽게 읽기 ⑨] 모든 국민은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아니한다
2017/05/18   |   조회 : 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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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억 배상금, 국가는 항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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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13조
제③조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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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개월 동안 제주도에선 2만 5천~3만여 명이 학살당했다

2003년 노무현 정권은 두 건의 과거 국가폭력, 제주 4·3과 수지 김 사건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명림로 403에는 제주 4·3평화공원이 있다. 10만여 평의 부지에 세워진 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4·3 평화기념관이 눈에 들어온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에 1만 6천여 사료를 소장·관리하고 있는 기념관을 모두 둘러보기 위해서는 적게는 2시간에서 많게는 4~5시간이 걸린다. 

짧지 않은 시간, 고통스러운 과거를 둘러본 관람객들은 출구에 도달할 즈음 녹초가 되곤 한다. 그러나 출구에 다다른 관람객들은 발길을 멈추고 한 영상을 바라보게 된다. 영상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등장한다. 영상 속 그는 2003년 10월 31일 현직 대통령으로서 55년 전 제주도에서 발생했던 이른바 4·3사건을 국가를 대신하여 사과하고 있다. 4·3사건이 무엇이기에 현직 대통령이 이미 55년이나 지나버린 일에 대해 사과한 것일까?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 4·3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 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8년 10월 말부터 1949년 3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이루어진 초토화작전에서만 대략 2만 5000~3만여 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제주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수다. 근래에는 제주 4.3을 반공이데올로기라는 이념과 제주인이라는 환상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특정집단의 대량학살로 일종의 제노사이드(genocide)로 보는 견해가 지지를 받기도 한다.

4·3기간 제주도에서는 무차별적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한 마을 전체를 학살하기도 했고 동굴 속에 수류탄을 던져 숨어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기도 했다. 그리고 연좌제의 일종인 '대살(代殺)'도 자행되었다. 

토벌대는 무장대와 민중의 연계를 막는다며 중산간 마을 주민들을 해안마을로 강제 소개(疏開)시키고 100여 곳의 중산간 마을을 불태웠다. 소개령 후 마을에 남아있던 주민들은 무차별 학살을 당해야 했다. 해변마을로 소개해온 사람들 또한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없다면 '도피자 가족'이라 하여 총살을 피할 수 없었다. '대살'은 도피한(또는 도피한 것으로 간주된) 자를 대신해 부모와 형제를 죽였다는 의미다. 연좌제인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연좌제의 금지다. 많은 이들이 연좌제라면 "3족(三族)을 멸하라"와 같이 조선시대에나 존재했던 형벌이라 생각한다. 

조선시대 기본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연좌제가 규정되어 있었다. 대역죄(大逆罪)를 저지르면 본인뿐 아니라 본인의 직계(直系)가족, 처가(妻家)의 직계가족 등 삼족을 멸하도록 했다. 더 나아가 9족에게까지 연대책임을 물어 죽이거나 귀양을 보내기도 했다.

가족의 일원이 저지른 잘못을 가족 구성원에게까지 묻는 연좌제는 대표적인 전근대적 형벌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현대의 역사에도 대살과 같은 연좌제가 버젓이 자행되었다. 오히려 조선시대의 연좌제는 경국대전이라는 법률에 따라 집행되었지만 제주 4·3은 법률도 무시된 채 무차별적으로 자행되었다.

남편에게 살해당한 여성, 간첩으로 둔갑하다

2003년 8월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대한민국을 피고로 하는 42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선고했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으로는 초유의 규모였다. 손해배상청구의 원고는 수지 김이라 불렸던 한 여성의 유가족들이었다.

수지 김은 1987년 1월 2일 홍콩의 한 저택에서 남편 윤태식과 다투던 중 살해당했다. 그러나 부부간 단순살인사건이었던 수지 김 사건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윤태식은 처벌이 두려워 수지 김을 북한의 간첩으로 꾸몄다. 자신을 납북하려다 실패한 수지 김이 북한 공작원들에게 살해당했다고 신고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 국정원)는 윤태식의 거짓말을 알고 있었지만 공안정국 조성에 활용하기 위해 수지 김을 간첩으로, 윤태식을 피해자로 조작했다. 부부 간 단순살인 사건은 반공투사 윤태식과 미녀 간첩 수지 김이 등장하는 대공사건으로 둔갑해 버렸다.

그러나 국가가 조작한 사건이라도 42억 원의 손해배상금은 지나치게 큰 금액이다. 이처럼 큰 금액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법원이 수지 김 가족들 전체를 직접적 피해의 당사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수지 김 사건 이후 그녀의 집안은 파탄에 이르고 말았다. 

빨갱이 집안으로 낙인찍혀 온갖 차별을 받아야 했고 언제나 안기부의 감시가 따라 다녔다. 어머니, 오빠, 언니는 수지 김 사건으로 고통 받다 세상을 떠났고 여동생은 이혼 당해야 했다. 죽어서 누명을 쓴 수지 김만이 아니라 빨갱이 가족으로 몰려 감시와 차별을 받아야 했던 유가족 모두가 국가폭력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이 역시 연좌제였다.

42억 원이라는 초유의 손해배상금과 유가족 전체를 광범위하게 피해자로 인정한 법원의 판단에 법무부는 항소하지 않았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대부분의 소송에서 항소가 진행되는 관례에 비추어 매우 이례적인 태도였다. 국가폭력에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온 유가족에게 국가가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민변 출신 강금실이었다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좌제는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이다. 국가는 군대와 경찰이라는 물리적 강제력을 독점한다. 때문에 국가폭력은 사인 간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피해를 발생시킨다. 또한 진실을 밝힐 권한마저 국가가 보유하고 있기에 진실이 밝혀지는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거나 아예 묻히기도 한다. 

제주 4·3은 55년, 수지 김은 16년이 걸렸다. 특히 국민 기본권의 수호자인 국가가 오히려 국민에게 폭력을 가하는 국가폭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중대범죄다.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되어야 하는 연좌제는 더욱 그러하다. 헌법 제13조 제3항이 연좌제를 금지한 이유다.

2003년 행정부 수반이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 4·3 당시 자행된 국가폭력을 사죄했다. 같은 해 사법부는 빨갱이로 몰려 십수 년 간 고통을 받아야 했던 수지 김 가족을 피해자로 인정하고 국가로 하여금 배상하도록 했다. 그리고 법무부는 이에 수긍했다. 

그렇다면 국가폭력, 특히 연좌제는 근절되었을까? 아직도 일부 보수세력은 광장에 나가 "빨갱이를 죽여야 한다"는 구호를 공공연하게 외친다. 그리고 공권력은 이를 묵인한다. 제주 4·3과 수지 김 사건의 이면에는 모두 반공이데올로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빨갱이를 죽여야 한다"는 구호를 들으면 언제든 연좌제가 다시 작동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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