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20170507 오마이뉴스_[헌법 쉽게 읽기 15]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2017/05/18   |   조회 : 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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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 장에 국가보안법 딱지


헌법 제22조 ①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헌법 제22조 제1항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학문은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을 막론하고 모든 학문은 진리를 추구한다. 다만 각각 자연, 사회, 문화라는 탐구 대상이 다르고 그에 따른 연구방법이 상이할 뿐 진리를 추구한다는 본질은 동일하다. 예술은 미적 경험을 일정한 형태언어로 표현하는 행위다. 그것은 인간의 창조적 정신의 표현이다. 독일연방법원은 히틀러 시대에 출세한 인물을 그린 1936년 암스테르담에서 출간된 소설의 출판금지 명령에 대한 메피스토-클라우스 판결(Mephisto-Klaus Beschluß)에서 "예술적 활동의 본질은 예술가의 인상·견문·체험 등을 일정한 형태언어를 매개로 하여 직접적인 표상으로 나타내는 자유로운 창조적 형성에 있다. 모든 예술적 활동은 논리적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의식적·무의식적 과정들의 혼합이다"고 정의한바 있다(BVerfGE 30, 173). 창조적 정신역시 결국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이며 아름다움의 추구는 진리에 대한 미적 추구이기 때문에 예술 역시 진리의 탐구, 즉 학문의 한 부류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존재한다.

여타 기본권들이 대부분 그러했지만 학문과 예술의 자유는 유독 권력과 갈등관계에 위치해 오고는 했다. "악법도 법이다"며 독배를 든 소크라테스나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외친 갈릴레이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경우 과거 군사독재시절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은 민주화운동의 핵심이었다. 예술과 권력의 갈등은 2016년 박근혜 정권이 1만여 명의 문화·예술계 인사를 반정부인사로 분류하여 불이익을 가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학문과 예술의 자유가 자주 권력과 갈등관계 놓이는 이유는 그것이 가진 진리탐구라는 본질적 속성과 문화가 사회에 미치는 강한 영향력 때문일 것이다. 진리탐구에는 대상의 제한이 없다. 국가의 통치형태 역시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학자와 예술인들은 이상적 통치형태를 탐구하고 현실의 모습이 그것과 다르다면 그에 대해 비판한다. 비판을 수용하여 바람직한 통치형태를 만들어갈 능력이 있는 권력에게 학자와 예술인은 조력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권력에게 그들은 탄압의 대상이 되고는 한다. 그렇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 많은 국가권력이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탄압하고자 했던 것이다.

2004년 UN 인권이사회는 대한민국과 관련된 진정사건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2000제926호). 한국정부에게 신학철 화백이 그린 '모내기' 그림을 돌려주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더해 90일 이내에 UN 인권이사회의 결정에 대한 조치를 보고하도록 했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아직까지도 그림을 돌려주거나 신학철 화백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는 130.3㎝×160.2㎝ 크기의 캔버스에 유화물감을 이용하여 그린 그림이다. 1986년 7월 20일경 그리기 시작하여 잠시 중단되었다가 1987년 6월경 다시 그려 그해 8월 10일 완성했다. 신화백은 '모내기'를 민족미술협의회(민화협) 주최의 제2회 통일전에 출품하였고 그해 민화협이 발행한 1989년도 달력에 게재되었다. 인천의 한 재야청년단체가 이를 부채로 만들었던 것이 해당 단체를 수사하던 서울시경 대공과에 압수되면서 문제가 시작 되었다. 검찰은 '모내기'가 북한을 찬양하였다며 그림을 압수하고 신화백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했다.

그림은 하단의 써레질하는 모습과 상단의 추수하는 모습으로 구성되어있다. 그 위로는 산이 그려져 있다. 검찰은 하단의 철조망, 미사일, 탱크, 코카콜라, 람보 등을 써레로 밀어내는 모습은 외세에 의해 힘겨워하는 남한을, 상단의 여럿이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누는 모습은 북한의 풍요로움을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림의 가장 상단에 그려진 산을 북한에서 소위 '혁명의 성산'으로 일컬어지는 백두산아라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그림을 직접 법정에 펼쳐놓고 신학철 화백을 신문했다. 그런데 증거물로 제출된 그림은 천막을 개듯 여러 겹 포개진 채 보관되어 있었다. 이를 본 방청석의 민화협 회원들은 "어떻게 예술 작품을 저렇게 보관 할 수 있냐"며 항의를 하기도 했다. 판사는 '모내기'의 한 부분씩 가리키며 신 화백에게 질문했다.

"이 작품이 피고가 그린 '모내기' 그림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그림에 있는 것을 하나씩 묻겠습니다. 맨 아래쪽에 그려진 건 무엇입니까?"
"모내기를 하기 위해 써레질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통일에 방해되는 것을 제거하는 거지요. 무얼 그렸습니까?"
"철조망, 미사일, 탱크, 코카콜라, 람보… 그런 겁니다."
"람보가 왜 통일에 방해가 됩니까?"
"외세는 통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그 위에 있는 장면이 모내기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모를 찌는 겁니다."
"모를 찌다니요?"
"모를 쪄내야(떠내야) 모를 내지요."
방청석에서는 한 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위는 무슨 장면입니까?"
"추수하면서 참을 먹는 겁니다."
"그 위에 그린 초가집은 김일성 생가를 그린 겁니까?"
"난, 그런 생각 한 적 없습니다. 무릉도원 같은 복사꽃 핀 시골 마을을 그렸습니다."
"그러면 화면 아래쪽, 소 뒤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굽니까?"
"아, 그분요. 그분은 우리 6촌 형님입니다."
답변이 끝나자 방청객들은 법정이 떠나갈 듯 웃음을 터뜨렸다.
(신학철의 ''모내기''는 잘 있는가, 유홍준. 참조).

신화백과 재판부의 신문은 신화백의 순박함과 검찰의 억지주장만을 남기고 끝났다. 신화백은 구속 3개월이 지나서야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1심 재판부는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2심 판결이 선고 된 지 4년 만에 대법원은 유죄취지로 원심을 파기했다. 결국 신화백은 징역 10월, 선고유예 2년의 형을 선고받았고 '모내기' 그림은 몰수당했다.

대법원은 그림의 제작 당시인 1986∼1987년경을 남한을 미제국주의 식민지로 보고 노동자, 농민, 학생, 지식인 등이 연합하여 미제를 축출하고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민중민주주의혁명론(NLPDR)이 득세하던 시기로 규정했다. 이어 그림의 상반부는 북한을 그린 것으로 전체적으로 평화로운 광경으로 북한을 찬양한 것이고 하반부는 남한을 그린 것으로 미·일 제국주의와 독재권력, 매판자본 등 통일에 저해되는 세력들이 가득하며 농민으로 상징되는 민중 등 피지배계급이 이들을 강제로 써래질하듯이 몰아내면 38선을 삽으로 걷듯이 자연스럽게 통일이 된다는 내용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했다(대법원 1998. 3. 13. 선고 95도117 판결). 그림과 NLPDR이론을 매우 작위적으로 해석한 후 둘을 결부시켜 이적표현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판결 이후 신학철 화백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까지 신화백에 대한 적절한 피해보상과 '모내기' 그림의 반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을 수는 없다며 그림의 반환을 거부했다. 심지어 UN이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9조에 위반된다며 그림을 반환할 것을 결정했음에도 한국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면 화면 아래쪽, 소 뒤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굽니까?"는 판사의 질문에 "아, 그분요. 그분은 우리 6촌 형님입니다"고 답변하는 신화백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지독할 정도로 순박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고 법원은 실형을 선고했다. '모내기'는 몰수되어 검찰의 창고에 갇혔다. 정부는 UN 인권이사회의 결정까지 무시하고 '모내기'의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물론 신화백에 대한 사과나 보상 역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신화백 사건은 현재 진행 중이다.

신화백 사건은 다른 의미로도 현재 진행 중이다. 그와 유사한 사건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대법원은 G20 정상회담 포스터에 일명 쥐박이 그림을 그린 작가에게 공용물건 손괴죄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2015년엔 정치인에 대한 풍자를 주요 주제로 예술 활동을 해온 팝아티스트 이병하에게 벌금 10만원의 선고유예가 내려지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듯 2016년엔 문화·예술인 1만여 명을 담은 블랙리스트가 정부에 의해 작성되기도 했다.

예술의 자유는 어떠한 소재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때 보장될 수 있다. 벽에 붙은 포스터에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벌금을 물어야 하고 정치인들을 풍자한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야한다면 학문과 예술의 자유는 요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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